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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활용방안 모색 학술대회 발표

김경아 2026-07-22 14:38:21 조회수 34

  

   "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국학의 진흥"  한국국학진흥원 으로 부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활용 방안 모색을 위한 학술대회 개최와 관련하여 주제발표를  요청 받음

  

   우리 연구회에서  이경준 회장(유네스코등재추진위원장)께서 

       "산림녹화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 추진 현황과 과제"  주제로 발표하심


        - 일시 : 2020. 10. 30  13:30               -장소 : 한국국학진흥원(안동 도산면)


        - 발표 자료    

       

제목: 산림녹화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 현황과 과제

 

                                                                     발표자: 한국산림정책연구회 이경준 회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요약

한국의 산림녹화는 20세기의 세계적인 기적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은 1945년 광복 이후 사회적 혼란과 가난을 딛고 짧은 기간에 산림녹화를 완성했다. 인류역사상 전 국토가 황폐해가는 문턱에서 반세기 만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산림녹화는 산사태 방지, 홍수와 가뭄 예방, 수자원 확보 등을 통해 주곡의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가경제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요즘 개발도상국의 무분별한 개발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산림면적이 감소하고 사막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6년 지구정책연구소의 Lester Brown 소장은 한국의 산림녹화는 지구 환경복원의 모델이라고 극찬했으며, 2008년 제10Ramsar 총회에 참석한 UNEPAchim Steiner 사무총장은 세계적 자랑거리라고 칭찬했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압력을 극복하면서 국토면적의 63%를 차지하는 산림을 제대로 보전해왔으며, OECD 국가 중에서 국토면적 대비 산림비율이 네 번째로 높다.

한국 정부는 1960년대부터 산림녹화 관련 법규 제정, 산림행정기구 개편, 황폐지에 대한 꾸준한 사방사업 수행, 뚜렷한 목표를 내세운 장기적인 산림녹화 정책의 수립(1차 및 2차 치산녹화10개년계획), 중앙과 지방정부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녹화정책 집행, 산림조합, 산림계, 양묘협회 등의 민간단체 조직의 활용, 온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민초조림을 통해 조기에 치산녹화를 달성했다.

자조와 협동 정신을 이끌어낸 마을 단위 연료림조성사업, 정신교육과 인센티브(소득 창출)를 통해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마을조림사업, 정부가 초기 자금을 융자해 주고 마을 소득을 보장해준 마을지정양묘사업, 농한기에 절량농가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제공한 사방사업, 30만 가구(당시 전체 농민의 13%)를 대상으로 확실한 생계수단을 마련해준 화전정리사업 등은 식수(植樹) 때마다 농민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서 요즘 연구되고 있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모범 사례(2014KDI 논문집)로 꼽히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산림청은 지금까지 총 44개 개발도상국의 1,283명의 임업인을 초청하여 산림녹화 교육을 실시하고, 12개국 현지에 120여명의 전문가를 파견하여 산림복원 현장을 지도하거나 직접 조림사업을 수행하고, KOICA와 공동으로 산림복구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반세기에 걸친 산림녹화 기록물은 현재 국가기록원(대통령 문서, 국무회의록, 총무처, 산림청 포함), 산림청 산하기관, 공공단체(산림조합, 산림계, 양묘협회), 기업, 학교, 독림가, 개인 등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다양한 형태로 정부의 공문, 조림 관리 대장, 사방공사 설계서, 산림항공사진, 연료림, 분수림, 대부림 관리기록부, 기술교육교재, 신기술 개발 연구보고서, 개인기록물, 사진, 동영상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 9,300건의 자료를 수집하여 분류하였다.

이 기록물들은 산림녹화 과정과 성공 요인, 당시 경제사회적 여건, 녹화사업의 한계점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되며, 현재 개발도상국에서 시도하고 있는 산림복원의 훌륭한 길잡이와 교훈이 될 수 있다. 이 기록물들이 UNESCO에 등재 되면 자료의 보존성, 활용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더욱 증대될 것이다.

 

1. 산림 황폐의 역사

한국의 산림 황폐는 수백 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었다. 조선왕조시대에는 국가가 모든 산림을 소유했으며, 산림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의 개념으로 일반 백성들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국가는 체계적인 조림사업을 실시하지 않았으며, 개방된 상태로 방치되어 누구나 산에서 연료를 마음대로 채취할 수 있었다. 대신 조선왕조는 궁궐, 관아, 군선에 필요한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서 쓸모 있는 나무가 자라는 지역의 출입을 막는 봉산(封山) 정책, 그리고 가장 쓸모가 많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금송(禁松) 정책을 펼쳤을 뿐이다.

일본은 35년간 조선반도를 점령하면서 특히 평안북도, 함경남북도, 경상북도에 있는 울창한 산림을 집중적으로 벌채해 만주 건설에 이용하고 본토로도 가져갔다. 더구나 전쟁 말기에는 송진을 채취하여 군사용 유류용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소나무 등걸을 마구 파헤쳐 산사태와 홍수를 더욱 악화시켰다.

해방 후에도 불운이 계속되었는데, 많은 해외동포가 귀국하면서 목재수요가 급증했으며, 무정부상태의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틈탄 도벌(盜伐)이 성행했다. 6.25 전쟁 기간에도 단속 경찰력이 약해진 틈을 이용한 도벌이 지속되었다. 정부의 대규모 전후 복구사업과 북한에서 내려온 많은 피난민들의 판자촌 건립은 막대한 목재를 필요로 했다. 전국 대도시의 장작사용은 19589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경인지구 도시 임산연료 반입금지조치로 중단되었다.

우리 역사상 산림황폐가 가장 심했던 때는 1950년대로 기록되고 있다. 1956년 요사방지(要砂防地, 사방공사가 꼭 필요한 황폐지)의 면적은 686,000ha로 늘어나서 풀과 나무가 전혀 없는 독나지(禿裸地)였으며, 전체 산림의 57%가 민둥산이었다(산림청, 1988). 단위면적당 임목축적은 1953년 통계에 의하면 5.6m3/ha로서 최악의 상태였다. 울창한 숲으로 변한 2018년의 158m3/ha에 비교하면 얼마나 초라한지 알 수 있다.

산림이 더 황폐해지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다. 비가 조금만 와도 산에서 흙이 씻겨 내려와 하천과 강바닥을 높여 제방이 터지면서 홍수가 발생했고, 이로 인하여 전답이 매몰되었다. 반대로 조금만 가물어도 하천과 강바닥이 마르면서 한발 피해가 커져 흉년이 찾아왔다. 치산치수에 실패한 곳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자연재해의 악순환이었다.

 

2. 산림녹화 과정: 역대 정부의 역할

이승만 정부는 해방 이후의 사회적 혼란과 곧 이어 터진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나름대로 산림복구에 노력했다. 산림분야의 전후복구사업은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에 의해서 195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어서 미국국제협력처(IC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는 황폐지 복구를 위한 녹화사업에 구호양곡을 지원하여 밀가루사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행정력, 예산, 기술, 국민 호응 부족으로 산림녹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단지 일부 사방공사에서 성과를 얻었고, 1951년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하면서 산림계를 공법인화 하여 연료림 조성을 독려하였으며, 1958년 대도시 임산연료 반입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1961년 박정희 군사정부는 산림황폐의 심각성을 깨닫고 산림녹화에 필요한 법부터 정비하기 시작했다. 임산물단속에 관한 법률, 산림법, 사방사업법, 국토녹화촉진을 위한 임시조치법, 청원산림보호직원배치에 관한 법률, 화전정리에 관한 법률 등을 차례로 제정하여 본격적인 산림녹화를 전개했으며, 1967년 산림청을 신설했다. 산림청은 연료림조성사업에 역점을 두어 농촌연료를 우선 해결하고자 했다. 이는 농촌연료를 해결하지 못하면 산림녹화가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73년 정부는 산림청을 농림부에서 내무부로 이관하였다. 산림청은 국유림을 관리하는 부서로서 전국에 71%에 달하는 사유림의 조림을 독려할 행정조직을 가지고 있지 못했는데, 내무부로 이관됨으로서 지방정부의 산림행정 조직(각도의 산림국과 시군의 산림과)을 활용하게 되었다. 또한 내무부가 주관하는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정신교육(산림녹화에 의한 홍수와 가뭄 예방 등의 혜택)을 함으로서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었으며, 경찰력을 통한 산림보호와 도벌방지도 큰 힘이 되었다.

정부는 1973년부터 1987년까지 제1차 및 제2차 치산녹화10개년계획을 15년 만에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서 총 205ha49억 본의 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전국 산림면적의 1/3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이 사업은 개국 이후 장기간에 걸친 가장 대규모의 성공적인 조림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1973년부터 검목(檢木)제도를 도입하여 조림지에 나무를 제대로 심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듬해 가을에 조림면적과 활착률을 점검하여 그 결과를 근무성적에 반영했다. 종전에 조림지의 활착률이 80%선이었던 것이 1984년에는 전국 평균으로 93%까지 향상되어 큰 성과를 보았다. 정실을 배제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검목관을 사전에 모아서 교육시키고 근무지 이외의 다른 도()로 파견하여 검목을 실시함으로서 교차검목제도는 요즘 거론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모범사례로 알려져 있다.

1998년에는 IMF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숲가꾸기사업을 개시했는데, 그 사이 10여 년 간 미진했던 기존의 조림지를 본격적으로 가꿈으로서 숲의 자원화가 가능해졌다. 정부는 사방사업과 화전정리사업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극도로 황폐했던 요사방지(要砂防地)1956년에 68ha(산림면적의 10%)에 달하였으나, 이승만 정부부터 조금 씩 사방(砂防)공사를 실시하여 1987년까지 완전히 녹화했으며, 1978년까지 30만 가구의 화전민(당시 농민의 13%)을 정리하여 700여년에 걸친 화전(火田)을 역사 속으로 사라자게 했다.

 

 

3. 산림녹화 과정: 민간단체와 국민의 역할

역대 정부는 산림황폐의 심각성을 국민보다 먼저 깨닫고 정부 차원에서 치산치수사업을 꾸준히 계획하고 집행했다. 그러나 정부가 조림과 사방 계획을 세워도 국민의 협조 없이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치산치수사업의 성공 여부는 어떻게 국민의 협조를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정부는 어떤 형태이든 농민들에게 인센티브(혜택)를 제공하여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해야 한다. 1950년대 유엔과 미국 정부의 원조사업으로 진행되었던 밀가루 사방은 가장 대표적인 인센티브를 의미한다.

1951년 이승만 정부는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하면서 산림계(山林契)를 공법인화 했다. 마을단위로 조성된 산림계는 산림보호의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연료림 조성, 수익 분배, 위탁조림 등의 업무도 담당하였다. 이어서 1961년 제정된 산림법에는 산림계, 산림조합, 산림조합연합회를 법인화하여 주민의 참여를 유도했다. 특히 연료림 조성은 식수과정에 참여한 가정만이 후에 연료를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규약을 만들어 시행함으로서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경우이다. 1965년 포플러심기운동에서는 정부가 묘목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공한지(특히 하천 부지)에 주민들이 함께 나무를 심어 수익을 분배했다.

19731차치산녹화10개년계획에서는 위탁조림에서 분수림(分受林)제도를 만들어 산림계에게 수익의 90%를 배분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대부림(貸付林)제도에 의해서 국유림에 조림할 경우 국유림 양여를 허가하여 산림계의 재산 증식을 도왔다. 산림계는 마을단위로 조성되었는데, 그 숫자는 1970년대에 전국적으로 21,511개소에 달했다. 이 중에서 천 여 개 마을이 마을지정양묘에 참여하여 전국 묘목생산량의 34.8%를 담당했다. 정부는 초기자금을 빌려주고 모든 묘목을 시중가격으로 매입함으로서 수익을 보장해 주었으며, 그 수익금으로 마을기금을 만들었다.

치산녹화계획은 새마을운동과 연계하여 수행되었는데, 새마을운동의 3대 모토(motto) 중에서 자조와 협동 정신은 산림계의 연료림 조성 사업에서 이미 싹튼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정신교육을 통해서 치산치수는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며 농업생산소득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식시킴으로서 식수사업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산림청은 산주(山主)대회를 매년 도별, 시군별로 개최하여 산림녹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때 조림왕을 전국, 도별, 시군별로 선정하여 표창하였으며, 수종별 조림왕도 선정하였다. 또한 산림청은 독림가(篤林家)를 지정하여 대규모 사유림 조림을 권장했으며, 각종 혜택을 부여했다.

 

4. 산림녹화의 성과

산림녹화사업은 1950년대 이승만 정부에서 시작하여 2000년대 김대중 정부까지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11950년대부터 1992년 정부가 국토녹화의 종결을 선언할 때까지 산림녹화사업의 성과를 나타냈다. 1988년부터 산지자원화계획을 세워 지금까지 연간 약 2ha 규모로 불량임지와 산불발생지에 조림을 계속하고 있다.

이로서 1950년대 전국 산림의 57%가 민둥산이었으며, 이 중에서 10%에 해당하는 68ha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황폐지 혹은 독나지(禿裸地)이었는데, 사방공사를 통해서 모두 숲으로 복원시켰다. 특히 경북 영일지구는 산림황폐의 역사가 오래 되어 115개 마을에 흩어져 있는 107ha의 반사막과 같은 지역이었는데, 1973년부터 5개년계획을 세워 4,538ha에 사방공사를 집중적으로 실시하여 세계 사방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대과업이었다. 화전(火田)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 된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1950년대부터 1979년까지 총 30만 가구(당시 농촌인구의 13%, 전국인구의 6%에 해당)가 경작하고 있는 총 12ha의 화전을 정리했다.

 

1. 해방 이후 1992(공식적인 국토녹화사업 종료)까지 정부가 주도한 치산사업의 성과

항목

기간(년도)

면적(ha)

식재 본수(), 혹은 가구()

조림

1948-1960

105

28

1961-1972

171.4

47.9

1973-1978(1차 치산)

108

29

1979-1987(2차 치산)

96.6

19

연료림 조성

1958-1971

93.4(성공 43.5)

 

1973-1977

20.8

(연료림 조성 완료)

 

사방

1948-1960

19

 

1961-1972

437,926

 

1973-1978(1차 치산)

41,789

 

1979-1987(2차 치산)

36,399 (요사방지 모두 없어짐)

 

화전

정리

1948-1960

 

수 백 가구로 추정

1961-1972

17,422

33,495 가구

1974-1979

107,216 (화전 모두 없어짐)

267,301 가구

 

위와 같은 노력으로 산림은 조금 씩 우거지기 시작하여, 단위 면적당 임목축적은 1953년에 5.67, 1970년에 10.4, 1990년에 38.4, 2000년에 63.5, 2010년에 125.6, 그리고 2018년에 157.8m3/ha로 증가하였다. 반세기 동안 임목축적이 30배 정도 늘어났다. 이 수치는 OECD 37개 국가 평균치인 116.6m3/ha보다 높다(임업통계연보, 2019).

이렇게 숲이 우거지게 된 배경에는 장기간에 걸친 정부의 적극적인 산림녹화사업 완수와 경제수준이 향상되면서 대체 에너지의 보급이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한국행정학회, 2009; 배재수 등, 2010), 정부가 국민들에게 교육을 통해서 숲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애림 사상과 자연보호 사상을 고취한 노력이 깔려 있다(산림청, 2007a). 이제 한국의 산림은 선진국 수준에 달해 있으며 많은 개발도상국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인구증가와 산업화는 대개 환경파괴를 동반하기 때문에 한국의 산업화와 산림녹화는 매우 예외적이면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최근 민주화까지 성공하면서 한국은 반세기 만에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유일한 개발도상국이 된 셈이다.

 

5. 산림녹화의 국내 파급효과

성공적인 산림녹화가 국내에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국토 보전과 수자원 확보

우거진 숲과 쌓인 낙엽층은 토양 유실을 막아주는 수단이다. 한국의 경우 황폐지에서 토사유출량은 연간 100/ha 이상 되는데, 숲에서는 0.7-1.0/ha로 매우 적은 편이다(박미호 등, 2018). 요즘 지구온난화로 세계적으로 지역적인 폭우와 가뭄의 빈도와 수준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거진 숲은 국토보전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한국의 산림(632ha)에 저장되는 물의 총량은 180억 톤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50여 개의 댐에 저장할 수 있는 유효저수량은 총 140억 톤이다. 따라서 산림에 저장되는 물의 총량은 전국 댐의 저수능력의 1.3배 정도 된다(산림청, 2007b).

 

2) 되찾은 금수강산과 산림자원 증진

과거 200년 이상 헐벗었던 우리 강산은 이제 예전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한국은 지하자원도 부족하지만, 지상자원은 더욱 없다. 우거진 숲은 그 자체가 국부(國富)이며, 미래의 목재 자원으로서의 가치와 각종 공익적 기능을 높여준다.

 

3) 농촌 생활환경과 영농환경 개선

치산녹화로 농촌의 생활환경은 눈에 띠게 좋아졌다. 새마을운동을 통한 아궁이 개량으로 농촌연료를 30% 절약했으며, 화전정리사업으로 화전민의 생활터전이 마련되었고, 우거진 숲에서 맑은 물이 연중 공급되므로 식수와 농업용수가 풍부해졌고, 산사태가 적어지면서 하천의 범람이 줄어들고, 홍수와 가뭄의 빈도가 감소하여 쌀의 자급자족을 달성함으로서 농촌의 경제 상황이 호전되었다. 숲이 우거져 농촌 경관도 향상되어 관광농원 등을 통해서 농외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4)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

1968년 정부는 농어민소득증대특별사업의 일환으로 밤나무 조림을 권장했는데, 밤나무는 산림녹화, 소득증대, 식량해결이라는 13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태리포플러 조림은 단기소득사업으로 성공했으며, 사방공사는 농한기에 농촌에서 농외소득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1998년 숲가꾸기사업은 IMF 금융위기 때 가장 성공적인 공공근로사업으로 인정받았다.

 

5) 협동 정신 배양과 계승

오래전부터 마을에 있었던 송계(松契) 문화는 해방과 더불어 정부가 1951년 도입한 산림계(山林契)로 이어져서 1970년대에는 치산녹화사업에서 산림계가 앞장섬으로서 온 국민이 나무 심는 행사에 참여하는 국민식수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으며, 새마을운동의 자조와 협동정신의 씨앗이 되었다. 산림계가 주도한 마을양묘는 마을에 소득을 창출했으며, 마을기금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6) 임업기술 개발 촉진

치산녹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연구기관에서 종자와 신품종 개량, 양묘, 식수, 무육, 등의 조림 분야, 병해충 방제, 산불 방지와 같은 산림보호 분야, 토양 보존, 산사태 방지, 사방공사와 같은 산림토목 분야, 항공사진과 측량 등 산림자원 조사 등을 포함한 많은 분야의 기술을 복합적으로 개발하여 응용하였다.

 

7) 국제 협력 증진

1986년부터 정부는 외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 대외경제협력기금법을 제정하고,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창설하여 본격적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후원을 시작했다. 2010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변신한 유일한 국가가 되어 개발도상국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공적개발원조(ODA)를 시작하였는데 산림분야가 앞장섰다.

 

6. 산림녹화 성공 요인

한국의 산림녹화는 다양한 각도에서 그 성공요인을 분석할 수 있지만, 필자는 다음의 여섯 가지를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열하고자 한다.

 

1) 정부의 다각적 산림녹화 관련 법률 제정:

산림보호임시조치법, 임산물단속에 관한 법률, 산림법, 사방사업법, 국토녹화임시조치법, 청원산림보호직원배치에 관한 법률, 화전정리에 관한 법률 등을 제정하여 산림녹화의 법적 근거를 꾸준히 마련했다.

 

2) 정부의 장기적인 산림녹화 정책 수립, 예산 반영 및 효율적 집행:

산림청 신설, 내무부 이관, 1차 및 제2차 치산녹화10개년계획 수립, 구체화된 목표 설정, 철저한 정책 집행을 위해서 지방행정조직 강화, 소요예산의 적기 배정, 필요자재의 적기 공급, 검목제도 도입, 마을양묘 권장, 화전정리사업, 지역완결주의 사방사업, 등을 시행했다.

3) 산림공무원의 높은 사명감:

지방행정조직을 강화하면서 각도에 산림국과 시군에 산림과를 신설하여 승진기회를 제공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유도했다. 국가통치권자의 각별한 격려 속에서 사명감을 드높였다.

 

4) 민간단체(산림조합, 산림계, 양묘협회)의 적극적인 역할:

공법인 형태의 산림계를 통한 자조와 협동정신을 고무시켰으며, 마을별로 연료림의 자체 조성을 유도했다. 마을양묘와 양묘협회의 협조로 필요한 묘목을 적기에 공급했다.

 

5) 새마을운동과 인센티브를 통한 농민 참여와 소득증대:

새마을교육을 통해서 치산치수가 농업생산성 증진, 영농환경과 농촌생활환경을 개선시킴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식수(植樹)에 따른 인센티브(incentive)를 제공하여 농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으며, 식수가 소득증대로 연결되도록 했다.

 

6) 우호적 경제 사회적 여건:

산림녹화 초기단계에는 농촌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소득도 낮은 반면, 농촌에 값싼 유휴노동력이 풍부해서 인력동원이 쉬었다. 후기단계에는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대체연료의 공급으로 임산연료 채취가 줄어들고 농촌인구도 감소하여 산림훼손이 감소했다. 당시 한국에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행운이었다.

 

7. 한국 산림녹화에 대한 세계적 평가

1967년 산림청이 발족한 이래 본격적으로 진행된 한국의 산림녹화사업은 조금씩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1982FAO한국의 농촌 임업 개발(Village Forestry Development in the Republic of Korea)”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4개국(서독, 영국, 뉴질랜드, 한국) 중의 하나라고 했다. 위의 3개 국가는 선진국으로서 전쟁 후 귀향하는 군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규모 조림사업을 성공시킨 경우이지만 이미 우거진 숲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유일한 개발도상국으로서 전 국토가 황폐한 상황에서 산림녹화를 성공시킨 쾌거였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1979220일과 198577일 두 번에 걸쳐서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를 기사화 했다. 2006년 미국의 지구정책연구소의 Lester R. Brown 소장은 "위기의 지구 문명 구하기(Plan B 2.0: Rescuing a Planet Under Stress and A Civilization in Trouble)" 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 자랑거리이며 우리도 지구를 다시 푸르게 만들 수 있는 희망을 한국에서 발견했다고 적었다. 이어서 2008년 제10Ramsar 총회에 참석한 유엔환경계획(UNEP)Achim Steiner 사무총장은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 자랑거리라고 칭찬했다.

한국의 인구밀도(520/km2)는 인구 500만 명 이상 되는 국가 중에서 현재 세계 5위에 해당한다.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이 진행되면서 반세기 만에 인구가 2배로 증가했다. 이로 인하여 산림에 대한 개발 압력이 꾸준히 있었지만, 한국의 산림면적은 그 동안 4% 정도만 감소하여 현재 전국토의 63%가 산림이다. 이런 점은 동남아 개발도상국가에서 경제발전을 계기로 산림이 무참히 벌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경제발전과 산림보전을 동시에 이룩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 연간 1,200ha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지구적 모범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은 개발도상국의 산림녹화는 경제발전보다 더 어려운 과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난다. 현재 한국은 37OECD 국가 중에서 핀란드, 일본, 스웨덴 다음으로 국토면적 대비 산림비율이 네 번째로 높다.

 

8. 산림녹화 기록물 UNESCO 등재 추진 현황

산림녹화(reforestation) 혹은 산림복원(forest restoration)은 긴 세월을 요구하는 비인기 분야로서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이뤄져야 가능한 사업이다. 특히 정부로서는 금방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국토녹화사업보다 더 시급한 경제발전과 민생안정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서 경제발전과 산림녹화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행운을 만들어냈다. 이런 값진 경험은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산업화와 지구온난화로 숲이 파괴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구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희망을 한국이 주고 있다.

한국산림정책연구회(1971년 창립)20166월 창립 45주년을 맞아 한국의 자랑스러운 산림녹화 역사를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서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자고 결의하면서, “산림녹화UNESCO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위원장 서울대 이경준 명예교수)를 발족하였다. 추진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산림녹화 기록물을 수집하고 분류하여 차기 UNESCO 기록유산위원회에 제출하고자 한다.

 

1) 기록물 수집 현황(2016. 6-2020. 10)

추진위원회 본부(국립산림과학원 내)에는 사무국, 기록관리본부, 연구관리본부, 대외협력본부를 두고, 전국에 50여 명의 도별 및 산림조합중앙회 추진위원을 위촉하였으며, 지금까지 총 9,300건의 산림녹화 관련 기록물을 수집하여 database화를 완료했다.

 

2) 산림녹화 기록물 생산기관별 분류

 

2. 산림녹화 기록물의 생산기관별 분류 체계

기록물 생산기관

내용

국가기록원

대통령 문서, 국무회의록, 관보, 국가홍보물

중앙부처

총무처, 농림부, 내무부, 문화관광부, 국방부, 외무부, 교육부,

산림청

임정국, 조림국, 영림국, 국제협력과, 홍보실

산림청 산하기관

영림서, 사방사업소, 임업시험장, 임목육종연구소, 임업연수원

지방자치단체

각 도 산림국, 시군 산림과

공공단체

산림조합연합회, 각도 산림조합지부, 시군산림조합, 산림계, 한독산림기구, 양묘협회, 학교(법인), 복지조림조합

회사, 개인

임업회사, 독림가, 양묘협회 회원, 산림공무원 및 교원 개인기록물

 

3) 산림녹화 기록물 유형 분류

3. 산림녹화 기록물의 유형 분류 체계

기록물 유형

내용

법령 제정

관보, 대통령 문서, 국무회의록

공문서

부처간 업무협조 공문, 조림명령서

사업계획서

조림계획, 도면, 사방설계서

사업집행서

조림대장, 조림 카드, 연료림 관리카드, 인부사역부, 출장보고서, 대부림 및 분수림 계약서,

홍보자료

우표, 포스터, 구어

사진, 동영상

현장 사진, 현장 기록 영화(대한뉴스, 내무부, 산림청)

개인기록물

작업일지, 근무일지, 연수수기, 여행기록물

증서

교육수료증, 표창장, 훈장, 독림가 지정, 복지조림조합

문자수록 기념물

비문, 검인, 인장

기타 기록물

국제협력, 연구자료, 교육책자, 정책심의회 회의록

 

4) 산림녹화사업별 기록물 분류

4. 산림녹화사업별 기록물의 분류 체계

산림녹화사업명

내용

(정책, 법률, 예산은 모든 사업별로 공통으로 포함됨)

종자 생산, 양묘

검사, 검수, 대장, 마을양묘

조림, 육림, 숲 가꾸기

묘목 수급, 식재, 무육, 검목, 숲가꾸기, 도시녹화, 분수림, 대부림

국유림 영림계획,

영림계획, 대장, 법령, 산림조사, 항공사진, 벌채

산림보호, 산림관리, 녹화정책

병해충 예방, 방제, 산불 예방, 진화, 산림사범단속, 재산관리, 산림조합관리

시방사업, 임도

중장기계획, 설계, 시공, 사후관리, 대장

화전정리

실태조사, 연차별계획, 사업실행, 이주민관리, 사후관리, 대장

연료림 조성

실태조사, 연차별계획, 조성관리, 산림계활동, IBRD차관, 대장, 분구개량

시험 연구

종묘, 조림, 육종, 육림, 사방, 산림경영, 산림보호, 산림조사, 목재이용

교육(산림공무원), 행사(식목, 육림)

직무교육, 해외연수, 각종행사(식목일, 육림의날), 산주대회

홍보, 국제협력, 임산물, 기타

홍보, 국제협력(UNKRA, ICA, USOM, UNDP, 한독, KOICA, AFoCO), 해외조림, 기술전수, 임산물, 기타

 

5) 산림녹화 UNESCO 기록유산 등재 시 파급효과

? 성공적인 산림녹화: 산림의 중요성 대국민 홍보 및 국제적 인지도 향상

? 지구사막화 시대: 모범국가로 공인

? 위기에 처한 지구 살리기 운동: 주도권 확보

? 산림녹화 기술과 정책: 해외 전수, 공사 수주 및 국제자문

? 한반도 녹화사업: 국제여론 조성 및 북한 녹화 참여 기회 확보

 

 

인용 및 참고문헌

1. 강원도. 1976. 화전정리사. 312.

2. 박미호, 오충현, 박찬열. 2018. 숲과 삶.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3. 배재수, 주린원, 이기봉. 2010.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 요인. 연구신서 제37. 국립산림과학원. 150.

4. 산림조합중앙회. 1992. 산림조합30년사. 675.

5. 산림청. 1980. 화전정리사. 607.

6. 산림청. 1988. 황폐지복구사. 855.

7. 산림청. 1989. 산림행정20년발자취. 934.

8. 산림청. 2007a. 대한민국 산: 세계는 기적이라 부른다. 임업신문사 엮음. 992.

9. 산림청. 2007b. 한국사방100년사 1907-2007. 838.

10. 임업통계연보. 2019. 산림청.

11. 이경준. 2014. 효율적인 정책 집행의 성공사례연구: 산림녹화행정. 223-440. 거버넌스 사례연구. 한승희, 최대용, 이혁우, 이경준. 440. KDI(한국개발연구원).

12. 이경준. 2015. 한국의 산림녹화, 어떻게 성공했나. 기파랑. 311.

13. 이경준, 윤여창, 최인화, 구창덕, 김의경, 김세빈. 2015. 한국의 산림녹화70.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438.

14. 한국임정연구회. 1975. 치산녹화30년사. 717.

15. 한국행정학회. 2009. 한국의 치산녹화 성공 사례 분석. 산림청용역보고서. 324.

16. Brown, Lester R. 2006. Plan B 2.0: Rescuing a Planet Under Stress and a Civilization in Trouble. Earth Policy Institute. Washington, DC.

17. 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1982. Village Forestry Development in the Republic of Korea. A Case Study. Forestry for Local Community Development Programme(GCP/INT/347/SWE) Rome, Italy. 104p.

18. FAO. 2015. Global Forest Resources Assessment. 2015 Desk Reference. Rome, FAO.